1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출구 앞에 지난 6일 흉기에 찔려 사망한 노숙인 조성준(가명·63)씨의 의자와 캐리어 2개가 덩그러니 남아있다. 장서윤 기자 서울 중구 서울역 역사에서 지하를 통해 숭례문 방향 건너편 출구로 나오면 펼쳐진 종이박스, 낡은 사무실 의자, 일회용 우산들을 볼 수 있다. 노숙인이 많이 머무는 '주류 스팟'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2~3명의 노숙인이 생활한다. 그런데 지난 6일 한 명의 노숙인이 이곳을 떠났다. 그는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서울역에 터를 잡은 노숙인 중에서 터줏대감이었다. 6일 자정을 5분 넘긴 시각 사회복지사가 챙겨준 생수에 “고맙습니다”라고 한 게 마지막이었다. 노숙인 조성준(가명·63)씨는 이날 새벽 4시쯤 지나가던 행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여느 때처럼 역 출구에 기대어 자고 있던 상태에서다. 같은 날 오전 경찰서를 찾아 자수한 30대 남성 A씨는 “환청을 듣고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A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둘이 일면식이 있던 사이인지 혹은 단지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찌른 건지 등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8일 구속됐다. 13일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나 찾은 범행 현장에는 고인의 유품이 된 항상 앉던 의자와 캐리어 두 개만 포대에 싸인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 방치된 짐처럼 그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이름 몰라 '아저씨'라고만”…기억되지 않는 죽음 취재진이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만난 서울역 노숙인들은 대부분 그를 “지나가다 한 번 봤나”라며 잘 모른다고 했다. 35년 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지금은 자립한 곽창갑(54)씨는 “12월에 한 번인가 봤지. 같이 술 먹었거든요”라고 기억했다. 곽씨는 “가끔 저녁에 급식소에서도 봤다. 어느 날부터 안 보인다고 했는데 죽었다더라. (마음이) 안 좋다. 슬프다”라고 말했다. 오가며 20년 넘게 그를 봤다는 곽씨도 이름은 알지 못했다. 그러면 평소에 어떻게 불렀느냐고 물으니 “아저씨라고 부르죠”라고 했다. 그를 돕던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그는 경상도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외환위기 이후 이곳 서울역으로 왔다. 그렇게 서울역에서 먹고 자기만을 20여년. 오랜 노숙 생활로 면역력이 약해져 2018년과 2019년에 결핵으로 입원도 했다. 지난해쯤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을 보니 희게 센 머리와 수염에 허리는 살짝 굽어 야윈 모습이 남아있었다. 지난 6일 서울역 인근에서 흉기에 찔려 사망한 조성준(가명·63)씨가 지난해 마지막으로 찍힌 모습. 사진 독자 제공 우대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팀장은 “스타일상 친구가 많지 않고 외진 데서 혼자 조용히 지내시기를 좋아하는 분이었다”며 “누구한테 욕하는 걸 한 번도 못 들었다. 상담 때도 본인 얘기를 잘 안 했지만, 남들한테 피해 주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사망하기 직전처럼 물이나 간식, 마스크를 받으면 “고맙다”라고 말한 게 그의 최대 표현이었다.
간간이 센터와 상담을 진행했던 그는 노숙에서 벗어나길 원했다고 한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도 그의 시설 입소를 위해 노력했지만 재산을 검증하는 절차에서 가족과 연락하기를 주저해 무산됐다는 게 센터 측의 설명이다. 우 팀장은 “안 좋은 편견들이 있지만 사실 대부분 노숙인들이 살아보려고 노력을 하는데 잘 안 된 분들”이라고 말했다. “아저씨도 좀 더 일찍 시설이나 병원에 가서 안정을 취했으면 좋았을 걸…”이라고도 했다.
지난해 서울 중구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에서 노숙인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 뉴스1 다른 노숙인들도 “언제 폭행이나 살인의 표적이 될지 모르겠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막노동을 하다가 다리를 못 써 2년 전부터 노숙을 시작했다는 강정남(59)씨는 “나도 여기(지하철역 출구)서 매일 자는데 그런 사건이 일어나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에는 서울역에서 지낸 여성 노숙인이 무차별 폭행을 당해 숨지는 일도 있었다.
노숙인 인권단체인 홈리스행동 주장욱 상임활동가는 “거리에서 지낸다는 이유로 폭력과 살인에 노출되는 건 문제가 있다”며 “단순히 맞지 않게 하는 보호차원을 넘어 안전하게 머물 공간을 마련하는 방향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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